던파에서 한 이야기지만 던파이야기는 아님 by 키세츠

이것은 게임 이야기가 아닙니다만... 게임에서 한 이야기라 게임 밸리로 보냅니다.

어제 먹다 남은 치킨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며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다가 문득 이건 아니다 싶어서 가방을 메고 집에서 나섰다. 남구 도서관에 가서 책을 반납하고 나와 남산을 넘어 태화강으로 내려갔다. 울산고래축제가 한창인 곳을 거들떠보고 태화교에서 번영교까지 걸어갔다. 성남동에 있는 오락실에 가서 펌프와 하오데를 했다. 펌프는 무난하게 쉬운 곡의 Freestyle 위주로 했다. 하오데4는 500원짜리 두 개를 넣고 총을 양손에 들었다. 1스테이지 보스는 수류탄 난무로 손쉽게 깼는데 2스테이지 보스에서 다 죽었다. 이 놈은 우째 수류탄을 맞아도 데미지가 안 박히나.... 오락실을 나와 다시 걸었다. 롯데백화점까지 걸어가서 반디앤루니스에서 책을 읽었다. 한참 후에 나와 국밥을 먹었다. 집까지 걸어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집에서 나설 때는 중천이었는데...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음악을 틀어놓은 채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TV를 트니 OCN에서 "아내의 일탈"이라는 제목의 일본 영화를 하고 있었다. 19금 딱지가 붙어있길래 기대를 하고 보고 있는데 등장 인물들의 내면만 묘사를 한다. 아우, 짜증나. 컴퓨터를 켠다. 던파를 켰다. 누구를 할까 싶다가 67아크를 붙잡고 9종 한정 팟이 있길래 거기에 들어갔다. 사람이 잘 안 모여서 잡담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한 명 들어온다. 오 세상에나. 닉네임이 "방학역"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도봉구 방학역 말하는 거 맞냐고 했더니 맞단다. 몇년전까지 거기 살다가 지금은 미국에 사는 사람이란다. 어쩐지 빨컴이 계속 들어온다 싶었다. 원래 사냥하면서 "ㄱㄱ"와 "ㅅㄱ"외에는 침묵을 고수하는 미덕을 가진 나였는데 왠지 자꾸 말을 붙여본다. 나말고 아무도 없는 집안이 쓸쓸해서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안 하고 지낸 여파를 채팅으로 풀고 싶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정말 반가운 지명을 만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방학동 살던 사람이라고, 그리고 댁도 방학동 살던 사람이면 혹시 도봉중 나왔냐고 묻는다. 맞단다. 내 선배님인지 후배님인지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자기가 선배일 거란다. 오오. 그래서 내가 97년도 졸업생이라고 하자 깜짝 놀라며 그럼 서른이 넘은 거냐며 놀라워한다. 자기가 이십대 후반이라 당연히 자기 쪽이 나이가 많았을거라 생각한 모양.... 어쩐지 서글퍼져서 나이이야기는 접자고 했다.

사냥에 집중하느라 대화가 좀 끊겼다. 다행이 이쪽은 엘마라서 각성기를 쓰고 있을 때는 챗이 자유롭다. 미국에 있다면서 미국 던파 안하고 왜 한국 던파 하냐고 했더니 미국 던파가 시스템이 병맛이라 못 하겠단다. 그러면서도 미국 던파를 욕 못 하겠는데... 자기가 미국 네오플 부사장이랑 안면이 있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우리나라 인터넷이 발전할만큼 발전했는데 ping말고 다른 걸로 빨컴 체크 하면 안되냐고 불만스러워 했다. 그래서 내가 산업현장에서도 ping 체크는 통신의 기본이라고 이야기하자 자기도 그쪽 업계에 대해서 안단다. 개발쪽에서 일한단다. 개발이랑 통신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했더니 임베디드도 한다나. 그래서 나는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일하는 플랜트에서 ping 체크 안 되면 일단 통신 안 된다고 봐야지 그거외에 다른 방법은 또 없을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3번 자리의 검성이 묻는다. 혹시 계장일 하시냐고.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 "계장" 어쩌고 한번 써놨다가 댓글들이 죄다 "게장"을 잘못 쓴거 아니냐고 묻는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같은 계장일 하는 사람 만나는 건, 그것도 게임에서 같은 파티로, 정말 신기한 일이다. 검성은 자동제어쪽에서 일하고 있단다. 혹시 내가 아는 업체 일까봐 업체 어디냐고 묻자 ETA라는 중소기업 제품이란다. 예전에 "월간 계장"에서 광고는 본 거 같은데 아직 발전소에 납품실적은 없는 듯.... 일단 우리는 보안상 제품명은 말할 수 없지만 모 업체의 DCS와 다른 모 업체의 PLC를 혼용해서 통신으로 연계해 쓰고 있다고 하자 이 인간이 DCS는 못 알아듣는다;;; 아니. PLC업체에서 일한다는 사람이 DCS가 뭔지 모르다니. 자동차와 제철쪽에 납품을 한단다. 내 느낌에 아무래도 검성은 영업직인 것 같다.

자동차와 제철이라니. 이 동네 근처가 아닌가. 우리 동네 아니냐고 했더니 서울 본사란다. 그러면서 나보고 어디냔다. "산업도시"라고 당당히 외쳐주었다. 울산이 바로 안 나오고 포항? 광양? 막 이런다. .... ㅠ_ㅠ 울산을 몰라본다고 서운해했더니 아까 그 방학역이 깐죽거린다. 울산, 갈 길이 멀군요. 그건 그렇다. 공감한다. 그래도 방학동 촌놈이 울산이라는 대도시에 나온게 어디냐고 하자 방학역이 움찔한다. "방학동 촌놈에서 움찔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어릴 때 방학동은 죄다 배추밭이었는데. 지금이야 사람 좀 사는 동네지. 검성에게는 나중에 발전소 납품 들어가거든 울산에도 한번 컨택 달라고 했다.

의혹에서 아가름에게 각성을 날리며 방학역에게 물었다. 거기는 몇시냐고. 캘리포니아, 아침 10시 반이란다. 아가름이 죽었다. 모두에게 좋은 밤이 되시라고 인사를 하며 팟을 나갔다. 방학역에게는 좋은 하루 되시라고 했다.

끝.

덧글

  • JamesBond 2011/05/30 11:53 # 답글

    읭? 울산 사시는군요.
    제 친척이 화봉동쪽에 살고 있어서 몇 번 갔었죠.
  • 키세츠 2011/05/30 12:21 #

    화봉동이 어딘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북구네요.
    전 남구에 살고 있답니다. 언제 한번 울산오시면 소주라도 한잔?
  • 샤아P 2011/05/30 11:53 # 답글

    하긴 게임에서 자기동네이름 닉으로쓰는 사람들 만나면 은근히 반갑죠
    전 보통 아는척 안하지만요 ㅋㅋㅋㅋ
  • 키세츠 2011/05/30 12:21 #

    저도 울산넣어서 하나 만들어볼까 싶다가도... 뭐 그 정도로 울산에 애착이 있지는 않아서요.
  • 엽기발랄 2011/05/30 18:32 # 삭제 답글

    팔자 좋으시군요~치킨에 오락에 낮잠에 던파까지..
  • 키세츠 2011/05/30 23:31 #

    누구냐, 넌.
  • Lunatix 2011/06/01 01:21 # 답글

    으잉 동질감이란건 좋은거죠. 저도 길드원말고는 겜할때 거의 말...을 안하고 솔플만합니다 잉잉;

    사실 몇달간 울산에서 살뻔한건 비밀 :P
  • 키세츠 2011/06/01 16:24 #

    따로 길드도 아니 들고 (개인길드 운영중) 그러다보니 게임하다 말할 일이 거의 없더라구요.
    이렇게 말한 것도 참 신기하죠.

    울산 좋아요, 울산.
  • snus 2011/06/06 15:46 # 답글

    가끔 아이디에서 무언가 뽑혀져 나오는 경우가 있기도 하죠.

    저도 제가 사는 특수 지역명을 단 사람이 있길래 말을 걸었더니 역시나 같은 곳에 사는분이더군요.

    거기다가 무려 거리가 10분이내!!

    그러나 왠지 만나면 좀 그럴거 같아서 급히 정리하고 도망간 추억이...
  • 키세츠 2011/06/06 22:03 #

    저도 만약 지금 방학동에 살고 있었으면 말 안 걸었을지도....

    전에 보니 울산연합길드라는 곳도 있는데 근처도 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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